칼럼

몸과 질병 서사

조한진희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이 말을 치열하게 비판해 왔다. 10년 넘게 그 말을 비판해 왔지만, 여전히 건강중심사회는 견고하다. 건강중심사회에 반대한다고 말하면 여전히 의아한 눈빛을 만난다. 건강을 중심에 둔 사고가 왜 문제인가, 오히려 건강이 아닌 성과를 위해 직장에서 야근을 하고 과로하는 사회가 문제가 아닌가라는 질문도 받는다.

그 말을 질병권1)(잘 아플 권리)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개인의 몸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자본의 속도와 생산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문제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 게다. 건강을 중시한다는 것과 몸의 상태와 속도를 존중한다는 것은 약간 다른 의미다.

내가 비판하는 건강중심사회는 건강은 선(善)이고 질병은 악(惡)이며 모든 아픈 몸들은 최선의 노력을 통해 건강해져야 한다는 요구를 강요받는 사회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 보라. 건강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현대 사회는 만성질환자의 시대이기도 하다. 나를 포함해서 최선을 다해도 건강을 회복할 수 없는 아픈 몸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이들에게 건강은 선이고 질병은 악이라는 프레임은 열등감을 강요한다. 그리고 건강한 몸만을 옳고 정상적인 표준의 몸으로 설정했을 때, 아픈 몸은 필연적으로 실패한 몸이 된다.

모든 생명체에게 생로병사는 필연이고,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한들 질병과 죽음을 삭제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누구도 질병에 걸리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사회가 아니다. 질병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건강은 완성된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증세 혹은 질병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세균이 들어왔을 때 열이 나는 증세는 몸이 세균과 싸우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인간은 열로 인해 몸이 아프다는 것을 감지하고 쉬거나 치료를 받으러 간다. 질병과 건강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은 딱딱한 고체처럼 존재하고 모든 아픈 몸들을 교정해서 건강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착각이 존재한다. 우리는 어쩌다 건강한 몸만을 옳은 것으로, 아픈 몸을 나쁜 몸으로 여기게 됐을까.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개인의 몸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여겨진다. 우리 몸의 속도나 상태와 상관없이, 언제나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건강하고 탱탱한 몸으로 준비되어 있길 요구받는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건강중심사회를 해체할 수 있을까. 유효한 전략 중 하나는 아픈 몸들의 질병 서사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내가 속한 다른 몸들에서는 저항적 질병 서사 운동의 일환으로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시민들과 함께 책 『질병과 함께 춤을』2)을 출간했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3)를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다리아는 자신은 오랫동안 아픈 자신을 자책해 왔다고 말했다.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서 배달 음식 대신 신선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퇴근 후 잠시라도 요가를 하지 않아서 질염을 비롯한 다양한 만성질환이 재발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미워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질병권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신이 아픈 원인은 자신의 게으름 때문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긴 노동시간과 왕복 4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은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운동을 할 시간을 빼앗아 가고 있고, 긴 출퇴근 시간은 모든 일자리가 서울에 몰려 있고 서울의 집값은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인천 끝자락에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회적 구조가 개인의 질병 서사에서 드러날 때, 사회는 아픈 몸에게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건강해지라는 요구보다는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사회 구조를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십 년 넘게 치료에 매진하느라 완치 이후로 삶을 끝없이 유예했던 나드는 마침내 말한다. “완치가 아닌 완치로부터의 자유를 원한다!” 건강 혹은 완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를 바꾸고,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함께 만들자.

 

1) 질병권은 건강권을 포함하지만 초점이 다르다. 건강권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면, 질병권은 만성적으로 아픈 몸으로도 온전히 잘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둔다.
2) <질병과 함께 춤을>은 시민단체 ‘다른몸들’의 ‘아픈 몸들의 공동체’이다. 2018년부터 함께 써온 질병서사를 묶어서 페미니스트저널 일다와 비마이너에 연재했고 동명의 책으로 출간했다.
3)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기획 조한진희, 연출 빠빠, 배우 나드 다리아 박목우 안희제 쟤 홍수영) 는 언론을 통해 공개 모집한 아픈 몸으로 사는 시민들과 워크샵을 통해 올린 연극이다. 2020년 7월 대학로에서 공연했으며, 2021년 백상문화예술대상 연극 부분 최종 후보에 올랐다. 연극에 참여한 시민배우들의 질병서사 및 연극제작 과정과 대본은 책<아픈 몸 무대에서다>(나드 외, 다른몸들 기획, 2022, 오월의봄)

조한진희(반다)

다른몸들 대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썼고,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 ‘돌봄을 돌보는 세계’,‘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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