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살과 껍질
계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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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현의 등에서 무언가 얇은 것이 벗겨지고 있다. 그것이 날개인지 아니면 미현이 이 년 만의 휴가지로 인도네시아의 섬 발리를 택하고 매일 서핑을 한 결과인지는 모른다. 이럴 때 등에 천천히 오일을 펴 발라 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을 천장 쪽으로 뒤집어 누우며 미현은 중얼거린다.
쓰라린가? 단 하나의 질문이 들려온다. 그것이 창밖 골목의 원숭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미현이 부정하고 싶은 사실이 질문의 형태로 발화된 것인지는
창문을 열자 모든 원숭이가 털 고르기를 멈추고 일제히 고개를 돌려 미현을 본다.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얼굴도 있다. 당장 웃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얼굴도 있다. 그중 하나와 눈이 마주친 미현은 그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실은 모든 원숭이가 웃고 있었다면)
미현은 남편이 있는 여자의 볼에 뽀뽀를 한 이력이 있다. 여자는 서핑을 하다 말고 모래사장에 앉아 있었으며 그로부터 두 시간 전 환각 버섯을 1g 먹은 상태였다. 뽀뽀 직후 여자는 코코넛의 살을 떼어먹으며 말했다. 파도 맛있다.
실은 등에 오일을 펴 발라 줄 아내를 찾고 있음을 여자가 알게 된다면 미현은 이틀 안에 발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실은 등에 오일을 펴 발라 줄 아내를 찾고 있음을 원숭이가 알게 된다면)
(실은 쓰라리다면)
직전의 결심을 거두기 위해 창문을 닫고 다시 침대로 향하던 미현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 얇은 것을 밟고 미끄러진다.
그것은 희고 불투명한 코코넛의 살이다.
계미현
웹 시집 <현 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yuns)>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http://thefallofthehyuns.net) 창작집단 개미와 꿀벌의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