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vol2-9
칼럼
몸의 순간을 획득하는 역설적 차원
허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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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낯선 곳에 가면 온몸이 귀가 된대요.” 안대를 쓴 관객이 퍼포머에 의지하여 골목길을 헤매게 하는 동선을 안무했던 위성희의 <극장흉내>(2023)는 이 같은 퍼포머의 말로 끝맺는다. 그것도 시야를 가리는 갑갑한 안대에서 이제야 벗어났다 싶은 순간, 처음의 출발 장소와 전혀 다른 곳에 관객을 떨궈둔 채, 길을 인도하던 퍼포머가 마치 약을 올리듯 길모퉁이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눈만 가리지 않았을 뿐이지 안대를 둘렀을 때와 같은 초민감적 몸의 상태는 아직 해소될 리 만무하다. 물론 곧 휴대폰의 GPS를 통해 귀갓길을 찾아내겠지만, 그전까지는 일종의 야생적 감각을 내재한 몸이라는 지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눈이 신체의 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신체로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눈은 그 자체가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분열될 때 비로소 신체로서 느껴진다는 것이며,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순간을 숲에서의 체험에 비유한 바 있다. 그는 화가 앙드레 마르샹의 말을 인용하여, “내가 숲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가 나를 바라보았고 나무가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그저 귀를 기울였다. … 화가는 우주에 관통돼야 하지 우주를 관통하길 원해서는 안 된다”라면서 보는 행위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기술한다. 이러한 역전에서 몸의 감각이 살아나며, 타자와 얽혀 있는 세계가 몸으로부터 와닿는다는 것이다. 상호 공존의 생태적인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하게 나타나는 지금, 그 가능성 역시 몸에서부터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각에 과부하가 걸릴 만큼 각종 디지털 기기와 이미지에 몰입한 채 살아가는 상황에서 그 역전을 기대하기란 녹록지 않다. 더구나 최근에는 VR이니 XR이니 하면서 눈 위에 씌운 HMD를 통해 가상 이미지를 창출하는 기술이 더욱 고도화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이전에 가상 세계를 출현시키는 가장 고전적인 장치 중 하나는 단연 극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심지어 그 근원에는 가상 세계가 빚어지는 장소로서의 몸이 있다는 것이 위성희의 관점이다. 가령 그의 작업에서 제시하듯, “레몬의 신맛을 떠올리지 마세요”라고 퍼포머가 속삭이는 순간 이미 몸은 그 신맛을 느낀다, ‘빈 공간’의 연극을 주창한 연출가 피터 브룩의 경우, 전쟁의 상황에서 굶주린 아이들이 연극을 통해 어떻게 먹을거리에 대한 감각을 더없이 생생하게 불러냈는지 언급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실재가 부재하더라도 가상은 마치 실재인 듯 다가올 수 있으며, 이미 인류는 태곳적부터 이러한 메커니즘을 잘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신화나 샤머니즘 역시 작동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샤를 스테파노프 같은 인류학자의 연구에서도 암시되며, 나아가 공연예술의 발생 또한 가능했음은 물론이다. 몸에 내재한 이러한 ‘이미 있음’의 차원은 기술적 진보라는 관념을 무색하게 만들기까지 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작업에서 눈꺼풀 혹은 안대라는 커튼에 의해 암전 되면, 조금 전까지 시야에 넣었던 골목의 풍경은 무대가 되어버린다. 관객 옆에서 인도하는 퍼포머의 이야기가 마치 희곡의 지문처럼 삽입되는가 하면, 시각적 허기를 채우려는 듯 관객의 몸에서 활성화되는 입체적 감각들과 만나 실재인지 허구인지 헷갈리게 하는 지점들을 빚어낸다. 작가 미셸 베르나르가 “상상력은 느낌 속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 허구가 갖는 신체적 근거를 이 작업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무대막 역할로서의 안대는 다른 한편으로 눈에 바로 덧대어지는 유사점으로 인해 VR 기기의 오랜 버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안대의 사용과 같은 시각의 제거나 최소화는 그 반대의 극한과도 상통하는 게 아닐까. 가령, 김수화의 <메타 헨즈>(2022)에서 안무가는 공연장을 그대로 매핑한 이미지를 VR 기기로부터 주시하면서 공간에 배치된 사물을 옮기는 등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가다가, 문득 얼굴에 완전히 밀착되지 않는 기기의 틈새로 감지하게 되는 실재에 관해 언급한다. 사실 꽤 무겁고도 거추장스러운 VR 기기를 착용하고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을 해본 이라면 그 순간 무릎을 칠 정도로, 그러한 틈새를 종종 의식하게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VR 기기를 통한 시각적 환영의 극대화는 가상 세계로 금세 빠져들게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반대급부적으로 몸을 붙들고 실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VR 속의 이미지는 장소 특정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관객들의 가변적인 위치까지 포괄할 수 없기에 가상적이며, 실재와의 간극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면서도 보지 못한다고 할 수 있는 공연자의 VR 기기는 안대나 다름없어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VR을 착용한 이는 관객이 아닌 공연자이며, 관객은 공연자의 설명을 통해서만 그 이미지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가상의 최대화에서 의외로 맞닥뜨리는 몸의 감각과 함께, 안무가의 상상력은 또 다른 차원으로 치닫는다. 몸과 결합하여 덧붙여지는 어떤 도구나 기계는 몸의 연장이나 확장이면서도 실은 몸의 제한성이나 취약성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안무가는 눈 위에 덧대어진 VR 기기만큼이나 과거의 부상으로 인해 자신의 몸 안에 더해진 금속 보철물에 주목한다. 여전히 기기를 눈에 얹은 채 일종의 사이보그처럼 보이기도 하는 안무가는 렉처 퍼포먼스의 방식으로 이 보철물에 관해 집요하게 추적해 들어간다. 그러다가 거기에 전류를 흘려보내 파동을 발생시킬 가능성을 언급하더니, 결국은 바다 깊은 곳에서 유영하는 고래의 초음파와 공명하며 함께 춤추기를 꿈꾼다. 더구나 안무가의 몸은 이미 고래와 동기화되어 춤추는 것처럼 나타난다. 이보다 아름다운, 타자와의 공존에 대한 상상력이 더 있을까 싶어진다. 또한 그의 춤으로부터, “상상적인 것은 모든 사람의 몸짓의 기초이고 현실의 중심에 있다.”(이자벨 지노 외)는 것을 절감한다.
결국 자본화된 스펙터클로 잔뜩 휘감긴 우리의 삶에서 ‘몸의 순간’과 맞닥뜨린다는 것은 매우 문제적이며, 뜻밖에 주어지는 일종의 선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위성희의 작업에서처럼 고대로부터 결코 퇴화되지 않은 채 잠재된 그 무엇이며, 김수화의 작업에서처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담지하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가장 취약함을 노출하지만, 그렇기에 반전과 구제의 여지를 내포하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허명진
무용전문지 <몸> 기자를 거쳐 2003년 제11회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공연예술지 <판> 편집위원, 국립현대무용단 교육&리서치팀, 남산골한옥마을 웹진 <온> 편집책임 등을 거치면서 무용의 접점을 다변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webzine-vol2-8
칼럼
내 몸은 오늘도 이동 중
진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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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맺고 싶은 관계
샤르코마리투스라는 희귀난치성 유전질환이 있는 장애인 가족은 늘 사례관리 1순위였다. 동네에서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주변은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교회 목사님은 큰 불행이 찾아온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생활공간과 몸은 언제든 보여줄 준비를 해야 했다. 도움을 받을 준비만 해야 하는 몸이 되는 것 같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현실에서 다른 대안도 없었다. 친밀함을 주고받는 관계를 원했지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주로 일방적으로 다가왔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났다. 내 몸이 누구와 어떻게 만나고, 어디에서 보여주고 싶은지 생각하고 말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나에게 도움을 준다고만 믿는 사람들에겐 내 몸의 경험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웠다. 장애가 있는 나와 내 가족들은 서로 기대어서 잘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상상하지 못했고, 아무리 말해도 증명하기 어려웠다. 불행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지만, 장애가 있어도 밝다는 말 속에는 나를 동정하는 마음이 깔려있었다. 내 몸이 맺고 싶은 관계를 더 지속하기 위해서 나는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이란 운동 단체의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몸을 이동시키고, 다르게 써보기도 한다. 이 글은 장애가 있는 몸으로 살아가는 나의 관계와 동료, 연대와 돌봄, 실패를 통해 계속되는 이야기다.
서로 돌보는 연습 중인 나의 몸
주도권을 갖는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활동한 지 8년이 다 되었지만 자주 실패한다. 물론 이 실패가 나를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공감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동정과 멀어졌지만 내 몸의 다른 습관을 보게 되었다. 장애가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같은 장애인인 동료를 대상화하고, 장애 여성으로서 차별 경험을 피해로만 말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이하 춤허리)의 동료들도 이곳에 와서 다른 장애 여성들을 통해 자신을 마주하는 것 같다. 그래서 끝없이 말하고 토론하려고 한다. 갈등하기 때문에 상처받고 나와 동료를 마주해가는 지난한 시간을 같이 견디기도 한다. 이 시간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 하자고 지지하고, 때로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우리부터 먼저 변해보자고 말한다. 그래서 나와 동료들은 자주 실패하고, 실패를 겪으며 쌓아온 시간은 또다시 활동의 동력이 되었다.
“네가 더 열심히 해야 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해” 착한 장애인이 되려고 노력한 시간만큼 익숙한 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누군가의 보조를 거절하는 덴 용기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나를 챙기려고 먼저 다가올 때 단호히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호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의 위치로 관계 맺고 싶었다. 당장 몸의 보조를 받는 것보다는 내가 왜 그랬는지 소통할 수 있는 동료가 되고 싶다. 장애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매사에 장애 때문이라고 탓하지는 말자고 한 다짐은, 바빠서, 힘들어서 등 여러 핑곗거리를 찾아 멈춰 있었다. 동료들과 느낀 몸의 감각이 점점 무뎌지기 충분했다. 그래서 업무를 주도적으로 하지 못할 때 장애와 그로 인한 느린 속도를 문제 삼았고, 비장애인처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우선시하며 함께하자는 동료의 신호가 들리지 않았다.
관계가 ‘나빠질까 봐, 실수할까 봐’ 몸이 굳어지지만, 그냥 넘어가는 순간 동료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친절한 관계 말고는 나에게 어떤 역할도, 갈등도 기대받지 않는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장애 여성으로서 한순간도 무시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라는 동료의 말을 계속 새긴다. 우리가 공연을 준비할 때 얼마나 요령 있게 보조를 하는지보다 서로의 말을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긴장을 주는 관계가 왜 필요한지를 말이다. 물리적으로 몸을 보조하는 것만이 돌봄이 아니다. 동료와 회의하고, 역할을 나누고, 활동 지원을 요청한다. 멈춰 있다가도 나아가는 상황과 맥락, 관계와 동료에 따라 돌봄의 방식을 더 고민하는 것, 매일 장애가 있는 몸으로 서로를 돌보기 위한 돌봄을 연습 중이다. 돌봄에 대한 지원이 탄탄하지 않은 사회 속에서 극복도 맘대로 되지 않는 내 몸을 탓하게 될 때, 나는 돌봄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몸, 실패해도 앞으로 가는 몸
2022년 10월 28일 나는 생애 첫 삭발을 했다.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삭발투쟁이 130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몇 달간 삭발할지 말지 수십 번 망설였다. 동료들은 안전함을 원했던 몸을 변화시킬 기회가 될 거라고 했다. 동료들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삭발을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의구심이 드는 한편, 나에게 어떤 힘을 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투쟁 당일, 삭발을 할 때는 별로 떨리지 않았다. 내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커다란 사명감으로 결정한 건 아니어서였을까. 그보다는 먼저 삭발한 옆의 동료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 화가 치밀었다.
삭발하고 나서야 머리카락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돌아봤다. 내 몸은 돌봄이 필요하기에,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었다. 나 혼자서는 머리를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보조받기 편하게 잘라야 했다. 어느 시기에는 하라는 대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머리를 길렀지만, 활동 지원사의 눈치를 보는 몸은 원하는 보조를 참고 줄이고 있었다. 이 경험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만 삭발하고 나니 정작 머리카락을 기르고자 했던 이유가 장애 여성으로서 여성성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단 걸 깨달았다. 솔직히 머리를 기를수록 나 역시 여성이 되는 것 같아서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삭발은 해방감을 주었다. 머리가 짧아지면서 보조를 요청하기가 더 수월해졌고, 여자다운 모습 외에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삭발은 내가 보조를 요청할 때도, 옷을 고를 때도 내가 계속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려줬다. 다시 이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실패할 기회를 얻고 연습해 보는 시간은 전보다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주었다.
동료들과 이동하며, 어색하게 움직이며
춤허리에선 몸을 돌보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PT나 필라테스를 각자의 장애와 몸에 맞게 변형해서 워크숍을 했던 경험이 있다. 헬스장은 장애 여성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공간이었고, 갈 수 있는 곳은 병원, 재활센터 복지관뿐이었다. 실제로 재활도 몸의 기능이 더 좋아질 수 있는 사람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중증 장애인의 몸은 들어가기 어려웠다.
작년 몸이동(異動) 프로젝트에선 요가 워크숍을 하면서 시간을 충분히 갖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의 부위별로 느껴지는 감각에 최대한 집중했다. 요가에서 이러한 과정을 이완이라 하는데, 연극 연습을 하는 것과 유사했다. 숨을 쉬며 내 몸의 상태와 감각들에 집중할 때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 갈지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가만히 있어도 되나? 답답하기도 했다. 장애를 갖고 있는 몸은 느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무언가를 계속하기 위해 움직인다. 내가 하기 어려운 요가 동작은 보완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했는데, 평소 내가 앉아 있을 때 다리를 높은 베개 위에 올려놓거나 몸의 각도를 조절하기 위해 쓰는 다양한 쿠션 등을 사용하는 방법과 똑같았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살아가며 나의 몸에 편안한 방법을 계속 찾던 감각이 요가와 연결되었다.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내 몸이 더 안 좋을 거라고 예상하지만 오히려 비장애인 동료보다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곧은 허리를 발견했다. 뇌 병변 장애 여성 동료는 강직되는 몸을 앞으로 숙이는 것보다 펼치는 동작을, 근육이 약한 나는 안으로 모으는 동작이 필요했다. 서로의 몸이 다르기에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서로의 몸을 이해하게 되었다. 몸이동 프로젝트 과정 중 제주로 이동하기도 했다. 몸은 신기하게도 낯선 곳으로 이동하자 관계를 선명히 보여주었다. 일상에서 동료의 몸을 궁금해하지 않는 몸은 즉흥극에서 동료의 충동과 움직임에 따라가지 못했다. 끝없이 펼쳐진 제주 바다를 핑계로 몸을 숨기고 싶었다. 잘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나의 마음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실체 없이 떠돌았다. 1인 극은 망했다.
제주 가시리로 이동했다. 요가나 즉흥 퍼포먼스를 할 때 휠체어에서 내려오는데에는 두세 명의 활동가가 조력한다. 서로의 몸을 최대한 밀착시키고 호흡을 맞춰야 하는 순간이다. 조금씩 가빠지는 동료의 숨소리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려는 동료의 수고와 배려를 알기에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은 줄인다. “허리를 받치고 양쪽 다리를 잘 잡아주세요”라며 내 몸을 솔직히 꺼내놓는다. 서로의 몸에 집중하며 합이 딱 맞아지는 순간. “제주도 음식이 건강해서 오늘은 좀 가벼운 거 같네요” 농담을 툭 던지며 긴장을 내려놓는다. ‘평평한 땅에서 걸어 다녀도 절뚝거리면서 걷는데 모래라면 발이 숭덩숭덩 빠지고’ 꼿꼿이 걸으려고 노력했던 몸이 제주의 모래 위에서 자유로워진 동료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색하지만 모두와 함께 이동했기 때문이라 했다. 동료의 몸이동 경험을 공명하며 조심스럽고, 두려운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서로의 몸이 만나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실체없이 떠도는 마음에 대해 말하기보다, 사소해 보이지만 입안에 맴돌고 있는 말을 꺼내고 싶어졌다. “손은 아래로 축 늘어져 뼈가 없이 덜렁거리고.”라며 내 몸을 내가 있는 그대로 표현할 때 빵 터지는 순간의 짜릿함을 느낀다. 장애인의 몸을 통해 차별하는 구조에 분노하는 것만큼, 갑작스레 건네는 장애 개그에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색한 감각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더 나누고 싶다.
활동가와 배우 사이에서, 의존하며 움직이기
제주로 이동하며 새로운 공간에서 활동 지원을 주고받는 몸, 자연과 만났을 때 압도되는 몸, 갈등이 생기는 몸을 경험했다. 또다시 멈춰 있는 내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옆에 있는 동료를 살피고 내일 더 해보자고 결단한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입안에 맴도는 말을 꺼내고 그 감정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즉흥극은 충동대로 욕구대로 움직여보는 연습이었다. 계속 실패하는 몸을 마주하면서 눈치 보거나 위축되지 않고, 오늘부터 다시 해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이전의 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을 다시 곱씹어 본다. 긴 시간 동안 동료에게 기대어 왔고, 나 또한 기댈 수 있는 동료가 되고 싶다. 실수할까 봐 불안한 마음을 서로 인정해야 다른 이야기들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활동가이자 배우로서 ‘이쯤 되면 잘해야지.’ 조급해지는 마음을 갖는다. 오늘도 나는 실패한다. 나와 갈등하고 동료에게 의존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눈치 보던 내 몸은 다른 관계로 이동할 수 있을까?
진성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활동지원현장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합니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여성입니다.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 동료들과 관계맺고, 갈등하며 익숙한 몸과 삶의 변화를 만드는 과정을 연습합니다.
webzine-vol2-7
칼럼
몸과 질병 서사
조한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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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이 말을 치열하게 비판해 왔다. 10년 넘게 그 말을 비판해 왔지만, 여전히 건강중심사회는 견고하다. 건강중심사회에 반대한다고 말하면 여전히 의아한 눈빛을 만난다. 건강을 중심에 둔 사고가 왜 문제인가, 오히려 건강이 아닌 성과를 위해 직장에서 야근을 하고 과로하는 사회가 문제가 아닌가라는 질문도 받는다.
그 말을 질병권1)(잘 아플 권리)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개인의 몸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자본의 속도와 생산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문제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 게다. 건강을 중시한다는 것과 몸의 상태와 속도를 존중한다는 것은 약간 다른 의미다.
내가 비판하는 건강중심사회는 건강은 선(善)이고 질병은 악(惡)이며 모든 아픈 몸들은 최선의 노력을 통해 건강해져야 한다는 요구를 강요받는 사회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 보라. 건강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현대 사회는 만성질환자의 시대이기도 하다. 나를 포함해서 최선을 다해도 건강을 회복할 수 없는 아픈 몸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이들에게 건강은 선이고 질병은 악이라는 프레임은 열등감을 강요한다. 그리고 건강한 몸만을 옳고 정상적인 표준의 몸으로 설정했을 때, 아픈 몸은 필연적으로 실패한 몸이 된다.
모든 생명체에게 생로병사는 필연이고,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한들 질병과 죽음을 삭제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누구도 질병에 걸리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사회가 아니다. 질병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건강은 완성된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증세 혹은 질병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세균이 들어왔을 때 열이 나는 증세는 몸이 세균과 싸우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인간은 열로 인해 몸이 아프다는 것을 감지하고 쉬거나 치료를 받으러 간다. 질병과 건강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은 딱딱한 고체처럼 존재하고 모든 아픈 몸들을 교정해서 건강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착각이 존재한다. 우리는 어쩌다 건강한 몸만을 옳은 것으로, 아픈 몸을 나쁜 몸으로 여기게 됐을까.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개인의 몸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여겨진다. 우리 몸의 속도나 상태와 상관없이, 언제나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건강하고 탱탱한 몸으로 준비되어 있길 요구받는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건강중심사회를 해체할 수 있을까. 유효한 전략 중 하나는 아픈 몸들의 질병 서사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내가 속한 다른 몸들에서는 저항적 질병 서사 운동의 일환으로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시민들과 함께 책 『질병과 함께 춤을』2)을 출간했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3)를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다리아는 자신은 오랫동안 아픈 자신을 자책해 왔다고 말했다.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서 배달 음식 대신 신선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퇴근 후 잠시라도 요가를 하지 않아서 질염을 비롯한 다양한 만성질환이 재발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미워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질병권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신이 아픈 원인은 자신의 게으름 때문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긴 노동시간과 왕복 4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은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운동을 할 시간을 빼앗아 가고 있고, 긴 출퇴근 시간은 모든 일자리가 서울에 몰려 있고 서울의 집값은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인천 끝자락에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회적 구조가 개인의 질병 서사에서 드러날 때, 사회는 아픈 몸에게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건강해지라는 요구보다는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사회 구조를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십 년 넘게 치료에 매진하느라 완치 이후로 삶을 끝없이 유예했던 나드는 마침내 말한다. “완치가 아닌 완치로부터의 자유를 원한다!” 건강 혹은 완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를 바꾸고,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함께 만들자.
1) 질병권은 건강권을 포함하지만 초점이 다르다. 건강권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면, 질병권은 만성적으로 아픈 몸으로도 온전히 잘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둔다.
2) <질병과 함께 춤을>은 시민단체 ‘다른몸들’의 ‘아픈 몸들의 공동체’이다. 2018년부터 함께 써온 질병서사를 묶어서 페미니스트저널 일다와 비마이너에 연재했고 동명의 책으로 출간했다.
3)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기획 조한진희, 연출 빠빠, 배우 나드 다리아 박목우 안희제 쟤 홍수영) 는 언론을 통해 공개 모집한 아픈 몸으로 사는 시민들과 워크샵을 통해 올린 연극이다. 2020년 7월 대학로에서 공연했으며, 2021년 백상문화예술대상 연극 부분 최종 후보에 올랐다. 연극에 참여한 시민배우들의 질병서사 및 연극제작 과정과 대본은 책<아픈 몸 무대에서다>(나드 외, 다른몸들 기획, 2022, 오월의봄)
조한진희(반다)
다른몸들 대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썼고,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 ‘돌봄을 돌보는 세계’,‘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등을 함께 썼다.
다른몸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damom.action/
webzine-vol2-6
칼럼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며 몸을 꾸릴지라도
남웅
[본문 크기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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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쯤 이태원 언덕을 지나가는 길에 누군가 등짝을 쳤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이가 명랑하게 눈을 맞췄다. 누구세요? 나야! 제도권 교육을 받던 시절 만난 친구였다. 당시에는 게이로 알고 지냈는데, 십수 년 전 트랜지션을 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
상대의 폭소. 민망한 마음에 이쪽도 실소를 터뜨렸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니. 정작 궁금해야 했던 건 네가 그동안 살아온 얘기가 아니었을까. 당시엔 안부도 연락처도 지금 쓰는 이름도 제대로 묻지 못하고 서로 갈 길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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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강력한 논리 중 하나는 이들이 후천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설이다. 섭리대로 태어났지만, 외부 영향을 받아 동성애자가 되었고 성별을 바꾼다는 시나리오다. 이런 접근은 동성애와 성별 불일치가 불우한 환경 속에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규범과 반목하고 동일시되지 못한 이들이라는 설명으로 이어지면서 ‘퀴어는 실패한 존재’라는 불행 서사의 서막이 된다. 일군의 사람들은 동성애에 ‘전염된’ 이들을 구해야 한다고, 불행해지기 전에 문란하고 불온한 싹을 잘라야 한다고 말한다. 하여 ‘전환치료’는 소위 ‘사랑’으로 다시 읽힌다. 이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의 교리뿐 아니라, 동성애와 성별 불일치를 정신질환의 항목으로 두어온 의학계의 오랜 역사를 지탱해온 지독한 논리다.1)
이에 성소수자도 응전한다. 대표적으로는 그것을 왜 우리에게만 묻느냐는 항변이 있다. 이성애와 남녀로 갈라치는 성별 이분법에 대해서는 왜 당연하게 생각하는가. 그것 또한 사회적으로 제도화되고 규범화된 (에이드리언 리치의 유명한 진단처럼) 강제적인 이성애주의가 아닌가. 공기처럼 당연하게 감각하는 이성애 기반의 성별 역시 강력한 재생산 제도와 법에 의해 사후적으로 의미 부여된 것 아닌가 말이다. 이성애도 당연히 거듭된 역사 속에 뼈와 살처럼 되어버린 담론의 산물이라는 인지는, 최근의 과학적 연구에도 주요한 변화로 개입하는 듯 보인다.
가까운 과거까지 종종 소개되었던 연구 중에는 ‘동성애 유전자’ 설이 있다. 그것은 동성애가 후천적으로 형성된다는 주장에 대한 대항 논리로도 많이 인용된다. 한데 동성애 유전자가 없으면 동성애자가 될 수 없는 건가? 동성애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이성애자로 살아간다면 그의 존재는 흔들리고 마는가?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남성이 성적 끌림을 느끼는 이가 트랜스젠더 남성이라면, 혹은 성별 구분에 저항하는 누군가라면, 유전자 입장에서는 조금 골치 아프지 않을까.
최근의 과학은 단일한 동성애 유전자가 없다고 말한다.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등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진이 2019년 8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 〈대규모 GWAS를 통한 동성 간의 성적 행동의 유전적 구조에 대한 통찰(Large-scale GWAS reveals insights into the genetic architecture of same-sex sexual behavior)〉2)은, 영국 바이오 뱅크(UK Biobank)와 미국 유전자 분석업체 23앤미(23andMe)의 47만 명분 게놈 자료를 대상으로 동성애의 유전적 요인을 추적하고 분석한다. 연구진은 동성애 성행동과 통계적으로 관련성을 보인 5개의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는데,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동성 성애적 행동에 8~25% 정도의 기여를 보이지만, 성적 지향을 결정하는데 미치는 영향은 1%를 밑돈다고 한다. (동성과 섹스하고 사랑의 감정을 나눈다고 해서 모두가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통계에 기반하는 분석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미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개념부터 위계적으로 구성되고 사회문화적으로 역사화 된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원적으로 젠더와 섹스를 나누는 이성애 가족의 체제는 국가와 산업의 근간으로 받들어지면서 자연적인 본성이자 규준이고 체제이자 사회의 대기를 구성한다. 적어도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이 자신들의 실존을 던져 파헤쳐 온 시도들은, 지금의 ‘자연스러운 것’이 어떻게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헤집으며 그것이 어떤 담론 체계로 구성된 것인가를 설명하고자 했던 점에 의의가 있을 것이다.
연구는 해당 결과가 성소수자 시민권이 어느 수준 보장되는 유럽과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점을 강조하며, 성소수자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와 제도적으로 지지하는 환경이 결괏값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코멘트를 잊지 않는다. 동성애와 성별정정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국가에서, 정체성을 알아도 숨겨야 하고 정보도 유통되기 어려운 환경에서 같은 실험을 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여기에 더해서 연구는 완전히 선천적인 동성애 기제의 발견 여부와는 별개로, 동성애를 병리화하고 치료할 대상으로 삼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는 당부를 놓치지 않는다.
과거 동성애의 선천성을 주장하는 접근에는 유전자 외에도 뇌 구조와 성호르몬, 면역 등의 접근이 있지만, 이들 또한 온전하게 입증하지는 못했다. 이는 몸에 새겨진 영구적인 유전자의 개념이 사회에서 규범화된 행태와 시간에 따라 고안되거나 사장되는 정체성의 이름과 일치하기 어려움을 증명한다. 젠더와 성애의 운명 역시 유전자가 점지할 수 없으며, 유전자 자체에 대해서도 특정 유전자가 단일하고 영구적인 성질을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근래의 후성유전학을 참조하면 DNA 속성이 외부의 누적되거나 변화해 온 위계를 학습하면서도 이를 다르게 실천하고 저항하면서 (재)창안한다고 말한다.3) 몸이 유전자의 설계를 체화할지라도 필연적으로 현실의 관계와 위계, 우연과 변칙에 던져지는 것을 안다면, 하여 욕망 또한 재구성될 수 있음을 안다면, 선천적으로 존재가 결정된다는 주장은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생애의 복잡한 역동을 간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몸을 탐구하고 욕망과 관계를 실천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규범을 강고히 하며 몸의 양태와 행위에 위계를 두고 범죄화하기에 앞서, 그가 자신을 설명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상해와 손상, 차별과 낙인 등의 위해를 겪지 않도록 사회·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지금까지 작동하는 이원론적 위계와 구분을 쉽게 폐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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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성기의 생김새로 가르자니 물리적 수술이 가능한 현실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생리나 임신·출산 능력으로 판단하자니 임신과 생리를 할 수 없는 여성들의 존재를 배제하게 된다. 해서 기준은 분자 단위로, 호르몬과 염색체의 차이로 선 긋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구분은 완전할까. 사람의 생김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택일해서 말할 수 있을까.
어디든 변칙은 있고 차라리 완전한 일치가 불가능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 세계에서 성별을 판별하는 기준은 대개 성기의 생김새로 이뤄진다. 성별 정정 판결 역시 최근에야 성별 지정 수술, 성기 재건 수술을 기준으로 삼지 않은 사례를 인정한다는 판례가 나오지만, 이는 너그러운 재판관의 개인 재량에 의존해야 한다. 최근 대법원은 성별 정정 신청자에게 성전환증 환자 진단서와 성전환수술 여부를 증명하는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예규의 조항을 폐지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4) 하지만 당사자의 주도적인 성별 정정을 위한 제도의 변화와 사회적 기준을 요구하는 일이 최종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일례로,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을 끊임없이 물으며 ‘젠더 무법자’를 자처하는 트랜스젠더 활동가 동료는 주변으로부터 그럴 거라면 트랜지션을 왜 했느냐는 물음을 끈질기게 받는다고 말하며 그때마다 이렇게 응대한다고 전한다.
‘그거야 저는 여자니까요.’
이원론적 성별이 누적된 역사와 담론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이원론적 구분이 당대를 살아가는 몸과 영혼을 오랜 시간 구성하고 구속해왔음을 누락하기 쉽다. 최근 소개되는 젠더 교육이 성별 구분에 대해 이분법보다 스펙트럼에 가깝다고 주장할지라도, 기존의 구분은 태어나기 전부터 공기처럼 일상이 되었고 태어날 때부터 체화되었다. 내가 아무리 나의 성별과 성적 지향을 선택할지라도 기존의 제도와 사회적 장치들로부터 자유롭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규범은 항상 일관되기만 할까. 규범에 예속된 이들은 그것이 제공하는 단일한 삶에 끼워 맞추기만 할까. 가령 현실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각기 단일한 기준과 규준을 갖기도 어려울뿐더러, 그에 획일적으로 동일시하며 살아가기도 어렵지 않은가. 다시 말하면, 시스젠더의 권력을 부수고 이원론적 성별 분리 체제의 해체를 주장하면서도 누군가는 지긋지긋한 이원론적 성별 체제 안에서 규범적 성별을 택한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적지 않은 이들은 주어진 성별 구획의 안팎에서 저만의 비규범적 젠더 양식을 창안한다. 규범에서 어긋난 성별의 양태와 습속을 수행하는 삶은 겪지 않아도 되는 불편을 일상에서 몸으로 감내하면서도, 제 몸을 설명할 언어를 찾아 배우고, 제도와 타협하거나 불화하며 몸의 질서를 갱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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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디에(Xiyadie)는 스스로 독학한 중국 전통 종이 공예 기법을 이용하여 섹슈얼리티를 시각화한다고 근간에 국내에 소개되는 작가다. ‘시베리아 나비’를 뜻하는 이름처럼 그가 사용하는 종이는 언제라도 찢기거나 오염되고 훼손되기 쉽고 열과 습도에 변형되기 쉬운 취약한 질료다. 하지만 그만큼 조형과 장식이 용이하며 섬세한 패턴과 형상을 조형할 수도 있다. 종이를 몸으로 은유할 수 있다면, 시야디에가 오리고 그리는 몸은 실루엣을 따라 제 본모습을 감출 수 있고 감춘 채로 드러낼 수 있으며, 몸의 윤곽이 사물과 풍경의 경계에 혼재될 수도 있다. 윤곽으로 출현하는 종이는 구분의 강박을 지우고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몸의 형상이자 풍경을 잇는가 하면, 무대와 바탕 면을 하나의 연결망으로 평평하게 이으며 서사의 깊이와 평면의 장식적인 화면을 품는다. 각각의 실루엣은 몸을 숨기는 동시에 출현시키며, 몸의 감각적 촉수들을 넝쿨과 줄기, 건물의 창살과 밧줄에 연결한다. 수직의 벽에 매달린 종이는 물감을 머금어 어디에 긴장과 흥분이 집중되는지 가리키는가 하면, 오려낸 형상과 물감의 농도에 따라 정체를 가늠하면서도 감춰둔 서사의 가능성을 상상케 한다. 마을 사람들과 가족, 공안의 감시를 피해 몸을 숨기지만 숨은 채로 부대끼는 이들은 전통을 따르면서도 동시에 적극적으로 제 성애적 쾌락과 몸들을 표현한다.
작가의 가위질을 통과한 종이의 형상은 작가의 자전적 생애 속에 그의 성애적 판타지와 엮이며 작업마다 (비)현실적 풍경과 사물들을 출현시키고 몸의 형상뿐 아니라 몸과 몸이 엉키는 형태 또한 변주를 시도할 수 있다. 종이의 기예는 나아가 종이를 투과하며 관객의 감수성에도 연결된다. 배경과 엉키는 중에도 누군가의 생식기와 눈빛, 손길과 스킨십은 처절하리만큼 작고 하찮은 모습으로, 하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촉수를 뻗는다. 종이처럼 구겨지고 찢어질지 모르지만, 얄팍한 물성은 상황에 따라 몸을 접었다 펼치고 숨겼다 드러내며 언제라도 들키고 손상될 수 있는 환경에도 쾌락과 생존을 잇는다.
이태원에서 나를 알아봐 준 친구와 비슷한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논 시절이 있다. 우리는 미(성년)자였고 대개는 게이로 취급되었으며, 소위 남자다움과는 거리가 먼 ‘끼순이’들이었다. 만나면 외로움과 연애의 욕구를 토로하고, 시중에서 ‘여자 같다’고 칭하는 말투와 태도를 뽐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은 각자의 사회생활과 다른 준거집단에 소속되면서 조금씩 멀어졌다. 누군가 성별 정정의 길을 택하며 제 삶을 걸어 나가는 동안, 다른 친구는 군대를 다녀오고 외모를 가꾸면서 자신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남자의 모습을 체화해갔다. 우리는 같이 놀던 친구였고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마다 다른 영역의 질서를 체득하며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갔다. ‘젠더퀴어’나 ‘논바이너리’라는 개념이 당시에도 익숙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법으로 몸을 표현하고 삶의 궤적을 그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단어만으로 몸을 지탱할 수는 없지만, 생소한 개념들이 집단을 이루고 언어와 문법과 일상을 그린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또 다른 우리는 다른 생애 주기를,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나는 회한에 젖은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글쎄.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작가인 댄 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3주기가 되는 2024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를 가졌다. 《댄 리: 상실의 서른여섯 달》(2.16-3.7)에서 작가는 전시장 공간을 숙성과 소멸로 채워 넣는다. 국화 다발로 매듭을 엮고, 삼베와 면포, 짚과 옹기를 이용해 숙성의 공간을 만든다. 바닥의 흙에서는 새싹과 버섯이 자라고 옹기에는 누룩이 발효한다. 부패하는 유기물과 발효하는 미생물은 생과 사를, 소멸과 탄생의 순환 시스템을 그리면서도 애도를 위한 예식의 무대를 펼쳐놓는다고 전시는 설명한다. 숨을 잃어가며 먼지처럼 부스러지는 꽃의 다른 편에는 울금으로 천을 염색해 유기물과 무기물의 경계를 흐린다.
전시는 해석상의 비약을 자제하는 모습이지만, 필자는 미생물의 작용을 호르몬과 유전자에 빗대고 싶었다(너무 손쉬웠기에 비유를 피한 것일까, 퀴어 당사자성이 강한 해석을 경계한 것일까). 사물을 부식시키고 시들게 만드는 효모와 곰팡이 등의 미생물은 생사의 틈새에 번성하며 경계 자체의 생태계를 펼친다. 미생물을 주입시켜 사물의 성질을 변형하는 과정은, 호르몬을 통해 몸의 형태와 체질을 변화시키는 것을 유비하게 만든다. 그것은 구분된 몸의 정의를 환기하면서도 동시에 부식시키며 교란하는 변형과 변칙의 실천을, 세대에서 세대로 제 특성을 전승하는 과정에서 안팎의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는 유전의 궤적을 떠오르게 한다.
변형과 숙성, 마모의 순환에 노출된 삶은 성과 쇠의 매듭으로, 미시적인 생화학적 작용들이 묶이고 풀리는 매듭들의 타래로 상상을 싹 틔울 수 있다. 상실과 망각의 시간은 그저 부정성으로만 점철될 수만은 없지 않을까. 정체성에 똬리를 틀면서도 언제고 정체성을 끌어안고 다른 자리를 점하거나, 정체성으로부터 다른 도약을 시도하는 몸을 그린다면, 언제고 변형하고 손상하거나 망가질 수 있을지라도 그 과정에 나가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의 몸은 부지불식간에 당신과 매듭을 엮어온 모습으로 화면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친구가 내려친 등짝은, 반가움에 어색함도 불사했을 이의 즉흥적인 한방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저만큼 멀리 가버린 생애의 좌표가 한순간 접혀 조우한 신호는 아닌지, 그러니까 변화를 거듭해온 우정의 신호가 지난 시간의 그리움과 변화를 하나의 점으로 합쳐낸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1)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질병분류(ICD) 표에서 동성애를 1992년에, 트랜스젠더를 2018년에 삭제했다. 이미 그 전에 미국 정신의학회(APA)는 정신질환 편람(DSM)에서 1987년 동성애를 삭제했다.
2) 해당 연구는 다음 링크에서 초록을 찾을 수 있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at7693
3) 후성유전학에 대한 설명은 데이비드 무어,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 정지인 옮김, 아몬드, 2023.에서 참고할 수 있다.
4) ‘대법원,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에 수술 확인서’ 지침 폐지 검토’, 법률신문, 2024. 1. 8.
https://www.lawtimes.co.kr/news/194745
남웅
미술·시각문화 비평과 인권 운동을 한다. 2011년 「동성애자 에이즈 재현에 관련된 논의」를 주제로 제4회 플랫폼 문화비평상 미술비평 부문에 당선되었고, 2017년 「오늘의 예술콜렉티브-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보지만, 얼마 동안 빛이 있는 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로 제 2회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했다. 현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와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소수자난민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술 기관과 잡지, 언론과 웹진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미술, 문화, 사회 분야의 글을 기고한다. 근래 ‘『앵콜』(토탈미술관, 2022)’, ‘『범람하고, 확장하는 Q』(나환 아카이브, 2022) 출판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당신을 지지한다’는 문장의 곤란함에 관하여'(세마코랄, 2022), ‘쾌락의 열병, 커뮤니티라는 그을음을 따라- 퀴어 미술 산보하기'(행성인 웹진, 2023.5) 등의 원고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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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애’ 는 새로운 시각의, 또 다른 예술의 ‘독특한 오브제’ 다.
김형희
[본문 크기 조정]
‘장애’는 단순한 용어가 아니고 하나의 문화이다. 그 안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며 같은 것을 보고 있더라도 전혀 다른 관점과 의식으로 전혀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이것이 장애예술인이 갖는 특성이고 수월성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에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상태’를 장애로 정의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장애유형을 3개의 대분류(신체 외부 장애, 신체 내부장애, 정신적 장애)와 15개의 소분류로 나누고 있다. 이는 좀 더 체계적이고 맞춤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장애인예술은 예술 자체보다 복지 차원의 장애라는 점이 부각되어 ‘장애인들이 예술을 잘할 수 있나? 장애인 치곤 잘했네’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예술정책 현장에서 장애와 예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생동감 있는 움직임은 기존 예술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장애’라는 주제가 품고 있는 소수자성과, ‘장애가 있어 못하는 것이 아닌, 장애가 있기에 가능한’ 도전의식, 창의성, 다양성 등이 동시대 예술의 미학적, 정치적, 사회적 흐름과 만나 ‘장애예술’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장애’의 결핍이 ‘예술’과 만나 세상과 소통할 때
‘장애예술’이라는 새로운 시각의 또 다른 ‘예술언어’가 된다.
‘장애예술’은 문화 다양성과 포용적 예술에 기반하여 새로운 ‘예술언어’로 사회에 다양성과 평등의 실천, 실행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현장에서 장애예술인들이 성장하고 잠재력을 발산하고 국내 장애예술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는 개념이다.
현존하는 예술 영역에 새롭게 등장한 ‘장애예술’은 아직 사전적 정의나 철학적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지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장애예술’이라는 새로운 길을 통해 장애예술인이 온전한 예술인으로 자립하고, 자아실현으로 성장하여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바뀌면 장애는 없다’
2020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공간 조성 및 접근성 확대를 위해 장애예술인 창작거점 공연장 조성이 추진되었다. 그리고 2023년 10월 24일 국내·외 최초로 높은 수준의 접근성을 갖춘 ‘모두예술극장’이 개관하였다.
모두예술극장은 창작 및 향유 접근성을 갖춘 공간이자, 예술적 가능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지원하는 열린 공간이다. 운영시설로는 공연장(250석), 창작공간(연습실 2개소, 스튜디오 1개소), 관객 휴식공간, 분장실, 장애인 화장실 등이 있으며, 공연장, 연습실, 창작 스튜디오를 저렴한 비용으로 정기·수시 대관하여 장애예술인(단체)의 창작·발표·교류 활동을 지원한다.
또한 공연장 및 창작공간을 중심으로 장애예술 창작 활성화 거점공간 운영,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넘어선 장애 예술의 활성화 및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한 포용적 문화공간 활용, 작품 및 프로그램 개발을 통한 모두예술극장의 정체성 확립, 국내·외 우수 장애예술작품 프로그래밍 및 창작지원 서비스 구축, 공연사업, 무대 기술 및 접근성 서비스 등 운영 체계 안정화, 장애‧비장애 예술가 협업공간 및 소통의 장(場) 구성, 관객 개발 프로그램 및 신규 관객층 개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공연 예매 접근성 지원으로는 네이버 톡톡/카카오톡 오픈채팅 1:1 문자 예매, 실시간 전화 중계를 통한 수어 예매, 음성통화 예매 등을 지원하며, 관객 선택형 배리어프리 회차 운영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개방형/폐쇄형 자막 해설(문자통역), 시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해설 및 개방형/폐쇄형 음성해설, 음성 소개, 터치 투어, 발달장애인을 위한 릴렉스드 퍼포먼스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접근성 매니저 지원의 측면에서는 직통 연결을 통한 접근성 서비스 신청, 공연장 및 공연 접근성 안내 지원(문자, 정보 영상 제공), 장애유형별 인적 지원 서비스(이동, 소통 지원) 등을 제공한다.
최근 최중증 장애인이 모두예술극장을 방문하여 남긴 말 중에 ‘그동안 이런 서비스를 받아 본 적은 처음’이라며 ‘다른 공연장을 가려면 사전에 전화해서 접근성에 대해 물어보고 도착해서도 10가지 이상의 불편함을 겪고 도움을 요청해야 했는데, 모두예술극장에서는 10가지의 불편함이 2개로 줄었고, 그 2개의 불편함마저도 접근성 매니저들이 해결해 줬다’고 언급했다. 이렇듯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환경이 바뀌면 장애는 없다.
장애 유형별 물리적·정서적 접근성 현황
모두예술극장은 국내 유일의 장애예술인 표준 공연장으로, 모든 장애인이 어려움 없이 창작 활동과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장애 유형별로 다양한 접근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공통 편의
지하철 2, 5호선 충정로역 7번 출구가 공연장 지하 2층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 내부 승강기에서는 층별 점자 안내 및 음성 안내가 제공되며 낮은 높이의 버튼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픽업 서비스를 사전에 예약하면 접근성 매니저가 미리 도착 지점으로 나가 안내한다.
이동 약자의 활동 측면을 고려하여 건물 바닥의 높낮이 차를 없애고 전면 평면으로 조성하였으며, 엘리베이터로 모든 층을 이동할 수 있다. 편의 시설로는 이용객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릴렉스 라운지와 남녀 장애인 화장실 및 다목적 가족 화장실, 수유실이 있다. 공연장 무대의 상하수1) 자막 모니터, 분장실의 자동 출입문, 그리고 휠체어 충전기(거치식 충전기 4개/이동식 어댑터 10개) 또한 이용이 가능하다.
– 휠체어 장애인
지하철 이용 시 충정로역 8번 출구 맞은편 엘리베이터에서 공연장까지 무단차로 이동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와 가까운 하차문은 애오개 방면 3-1, 서대문 방면 6-1이다. 엘리베이터 1호기에 탑승하여 B1층 대합실로 올라온 뒤, 개찰구를 나와 8번 출구로 이동하여 엘리베이터 2호기를 이용하면 지상으로 나갈 수 있다.
장애인 콜택시 이용 시 모두예술극장 건물 초입에서 하차하면 턱이 없는 평면 도로가 건물까지 이어져 휠체어 이동이 용이하다. 자가용 이용 시 주차장 입구는 건물 뒤편에 있으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은 지하 2층에 6면이 마련되어 있다. 주차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리면 모두예술극장에 도착한다.
건물의 입구는 수평 접근이 가능한 자동 출입문이며, 공연장 로비에서 외부로 향하는 대피로 또한 단차가 없다. 휠체어 이용자의 높이에 맞춘 낮은 매표소 및 안내 데스크는 물론이고, 공연장 조정실 또한 무단차로 설계되어 있다. 공연장 내에는 경사로를, 분장실 안에는 장애인 화장실을, 샤워실에는 샤워 의자를 설치하여 쾌적한 공연 관람 및 창작 환경을 조성하였다.
– 시각장애인
시각장애인의 경우, 건물 출입구의 촉지도식 안내판 및 음성 안내를 통해 건물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공연장 내에는 점자블록 및 안전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으며, 안내견 동반 휴식공간과 폐쇄형 음성해설 수신기(50대) 또한 준비되어 있다.
– 청각장애인
매표소에 히어링 루프 시스템을 설치하고 수어통역사와 함께 응대 카드 및 패드를 비치하여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또한 문자 안내 방송 시스템(연습실 3대/분장실 4대)과 조명을 활용한 시각경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모두가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1) 상수와 하수는 무대 용어이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볼 때 오른쪽을 상수, 왼쪽을 하수라고 부른다.
김형희
최고의 무용수를 꿈꾸던 대학시절, 교통사고로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고,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하여 30여 년 동안 화가로 활동, 임상미술치료사, 기획자, 강연자 등 꿈과 희망, 도전을 전하는 멀티아티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webzine-vol2-4
칼럼
표준형 어린이
김지완
[본문 크기 조정]
고층 아파트에 방문할 일이 생기면 승강기 내부 버튼의 위치와 배열을 본다. 요즘은 세로형 버튼과 가로로 된 장애인용 버튼이 함께 놓인 곳이 많지만, 과거에 지어진 아파트는 그렇지 않았다. 세로형 버튼만 한쪽 편에 놓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것의 위치를 여덟 살 때 처음 인식했는데, 그 무렵 가족이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13층 꼭대기 층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래 평균 키를 한참 밑도는 작은 체구의 여자애였다.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내 키로는 두 번째 줄 맨 꼭대기에 있는 13층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창피해서 한동안 그 사실을 숨겼다.
4층을 누르는 아저씨가 있고 12층을 누르는 아줌마가 있으면 12층에서 내려 비상구 계단으로 올라갔다. 6층을 누르는 언니가 있고 11층을 누르는 할머니가 있으면 11층에서 내려 비상구 계단으로 올라갔다. 3층을 누르는 아저씨와 단둘이 타게 되면 그냥 내 손이 닿는 제일 높은 층을 눌렀다. 집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이런 방식을 썼다.
“너 꼭대기 층 사는 애 아니야? 왜 10층에서 내려?”
어느 날 10층에 사는 언니가 습격처럼 질문을 날렸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언니는 당황했다.
“세상에…. 그럼 오늘은 내가 눌러줄게.”
“근데 저 그냥 9층에서 내려서 뛰어 올라가면 되는데요? 13층까지 1분 만에 갈 수 있는데요? 별로 안 힘든데. 진짠데요.”
나는 과장되게 거절했다. 어린이의 영문 모를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던 건지는 몰라도 언니는 13층 버튼을 눌러주지 않았고, 나는 별일 아니라는 태도를 유지한 채 문이 열리자마자 비상구로 뛰어가 축지법으로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한테 이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쪽팔려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승강기로 데려갔고 버튼 앞에서 까치발을 드는 내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 껄껄껄 껄껄껄 막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물론 그냥 웃기만 하지는 않았고 집에서 망치와 판자로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었다. 조그만 상자같이 생긴 발판이었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승강기에다 발판을 의기양양하게 내려놓았다.
“올라가 봐라.”
할아버지가 만든 발판과 승강기의 모서리가 퍼즐처럼 딱 들어맞았다. 나는 그게 굉장하다고 느꼈고,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지금 아주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할아버지, 나는 1층에서 누를 때 13층 버튼이 안 닿는 건데…?”
“올라가면 이제 닿는다. 올라가 봐라.”
“여기는 13층 엘리베이턴데…? 나는 이거를 1층에 놓고 싶은 건데…?”
여덟 살의 나는 층마다 승강기가 각 한 대씩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논리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아무튼 그때의 내 머릿속에서는 승강기가 층층이 있는 집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발판은 ‘13층에 있는 승강기’가 아니라 ‘1층에 있는 승강기’에 놓여야 하는 거였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설명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부터는 발판에 올라가 13층 버튼을 수월하게 누를 수 있었다.
“엄마야, 키가 너무 작아서 안 닿는가베? 니 얼른 커야 되겠다.”
그러나 발판에 올라가는 내 뒷모습을 보며 한두 마디씩 얹는 어른들은 잊을 만하면 나타났고 나는 그때마다 번번이 마음을 다쳤다. 학교에서 크고 작게 속상한 일이 있었던 날에는 그냥 예전처럼 아무 층에서나 내려 비상구 계단을 이용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나를 위해 만들어진 발판을 마치 절교한 친구를 바라보듯 낯선 표정으로 바라보는 날들이 있었다. 나는 이 일련의 일들이 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탓이라고 생각했다. 표준, 평균, 정상, 일반과 같은 단어들이 단어와 그 뜻을 채 알기도 전에 관념으로 내 안에 먼저 자리 잡았다. 내가 그것들에 못 미치는 어린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무렵 또 하나의 딜레마가 있었다. 발판을 외면하고 발판을 쪽팔려 하는 일이 그것을 만들어준 할아버지를 외면하고 할아버지를 쪽팔려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온 뇌 병변 장애 2급이었다. 꾸준히 재활운동을 한 덕에 그는 비장애인보다 가구나 기계를 훨씬 잘 조립했고, 택시운전사 경력으로 운전도 무척 잘했으며, 지금도 집안 곳곳을 보수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는 탁월한 장인과도 같다. 나는 가끔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등교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창문 밖으로 아이들이 나를, 정확히는 나와 내 할아버지를 발견할까 봐 거북이처럼 목을 집어넣고 조수석에 눕다시피 했다. 할아버지가 한 번은 왜 그런 자세로 있느냐고 물었다. 이게 편해서. 성의도 없고 자신도 없는 내 대답에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알아차렸을까 그때도 두려웠고, 사실은 지금도 두렵다.
나도 할아버지도 표준이 아니라는 생각…. 발판이 쪽팔린 것과 할아버지가 쪽팔린 것과 내가 나라서 쪽팔린 것이 도무지 구분되지 않았다. 나쁘고 어리고 구린 나를 지금까지 기억할 줄 알았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테다. 그러나 달리 어떡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승강기에는 가로형 버튼이 없는데, 학교에서는 “야 이 장애인아!”를 욕으로 쓰는 아이들이 존재하는데, 그 날것의 세상에서 어린이는 나와 발판과 할아버지의 장애를 몽땅 미워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작은 키를 쪽팔려 하는 어린이는 할아버지의 장애를 쪽팔려 하는 어린이가 된다. 자신의 작은 키를 쪽팔려 하는 어린이는 다른 친구의 쪽팔린 점을 발견하는 눈을 가지게 된다. 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표준과 평균과 정상과 일반같이 하얀 단어로 약자의 삶을 침투하고 독처럼 퍼져나간다. 몸에 대한 모욕이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이 다양한 층위의 약자를 순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른이, 교육이 어린이에게 말해줘야 한다. 쪽팔린 몸이라는 건 이 세상에 없단다. 정말이지 그런 건 없단다.
좋은 어른이란 발판에 올라 버튼을 누르는 어린이를 함부로 귀여워하는 대신 장애인용 버튼이라는 시스템을, 그 시스템의 부재를 생각해낼 줄 아는 어른이라고 믿는다. 약자를 위한 시스템의 가장 멋진 점은 그것이 다양한 층위의 약자를 순환한다는 것이다. 가로로 된 장애인용 버튼을 키 작은 어린이와 장애인이 함께 쓰듯이.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승강기를 장애인과 노인과 임산부가 함께 쓰듯이. 어느 날 발목을 접질린 비장애인이 장애인용 승강기를 타면서, 새삼스레 승강기의 존재를 깨닫고 가슴을 쓸어내리듯이.
나는 할아버지의 새하얀 기아 크래도스 초기형 자동차를 타고 등교하던 어린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은 계단을 뛰어오르지 말고 발판 위에 올라가 승강기 버튼을 눌러보라고. 발판을 만들어준 할아버지한테는 감사하되 버튼 위치를 이렇게 만든 승강기 업체를 향해 속으로 침을 뱉어버리라고. 표준형 어린이 같은 건 그때도 지금도 없다고.
김지완
동인 <문어뱅스> 소속입니다.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씁니다. 2023년 마해송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4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린이에게 잘 보이고 싶습니다. 어린이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 저도 좀 끼워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먼저 재미있는 글을 들고 기웃기웃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webzine-vol2-3
시
살과 껍질
계미현
[본문 크기 조정]
미현의 등에서 무언가 얇은 것이 벗겨지고 있다. 그것이 날개인지 아니면 미현이 이 년 만의 휴가지로 인도네시아의 섬 발리를 택하고 매일 서핑을 한 결과인지는 모른다. 이럴 때 등에 천천히 오일을 펴 발라 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을 천장 쪽으로 뒤집어 누우며 미현은 중얼거린다.
쓰라린가? 단 하나의 질문이 들려온다. 그것이 창밖 골목의 원숭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미현이 부정하고 싶은 사실이 질문의 형태로 발화된 것인지는
창문을 열자 모든 원숭이가 털 고르기를 멈추고 일제히 고개를 돌려 미현을 본다.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얼굴도 있다. 당장 웃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얼굴도 있다. 그중 하나와 눈이 마주친 미현은 그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실은 모든 원숭이가 웃고 있었다면)
미현은 남편이 있는 여자의 볼에 뽀뽀를 한 이력이 있다. 여자는 서핑을 하다 말고 모래사장에 앉아 있었으며 그로부터 두 시간 전 환각 버섯을 1g 먹은 상태였다. 뽀뽀 직후 여자는 코코넛의 살을 떼어먹으며 말했다. 파도 맛있다.
실은 등에 오일을 펴 발라 줄 아내를 찾고 있음을 여자가 알게 된다면 미현은 이틀 안에 발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실은 등에 오일을 펴 발라 줄 아내를 찾고 있음을 원숭이가 알게 된다면)
(실은 쓰라리다면)
직전의 결심을 거두기 위해 창문을 닫고 다시 침대로 향하던 미현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 얇은 것을 밟고 미끄러진다.
그것은 희고 불투명한 코코넛의 살이다.
계미현
웹 시집 <현 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yuns)>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http://thefallofthehyuns.net) 창작집단 개미와 꿀벌의 일원이다.
오렌지 되기
시
오렌지 되기
강혜빈
[본문 크기 조정]
귤 종류의 하나인 오렌지는
3.2 킬로그램의 튼튼한 한국인으로 태어났다
둥글고 견고함 무겁고 부드러움을 겸비한 오렌지는
21세기에 태어나고 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태어나자마자 세계의 착잡함을 알아버린
오렌지의 꿈은 다름 아닌 자연사自然死였다
오렌지는 오렌지를 낳은 오렌지들의 첫아이였으며
오렌지 아래로 동생 셋이 있었으나
둘이 병들어 죽고 하나는 살아서 우애가 좋았다
오렌지는 울퉁불퉁한 껍질과
축축한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대부분은 중성이었으나
때로는 활짝, 나비의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푹 익은 마멀레이드가 되어보기도 했으며
누군가의 살뜰한 연인이
아이스크림 가게 직원이
택배 기사 혹은 파일럿이
사소한 낑깡이 되기도 했다
괄호 열고
오렌지 낯설게 발음하기
괄호 닫고
물 한 모금
두리번거리다 배를 긁다
의식적으로 침 삼키기
의식적으로 눈 깜빡이기
의식적으로 혓바닥의 위치 느끼기
의식적으로 인간처럼
괄호 열고
오렌지 마침표
오렌지 쉼표
오렌지 느낌표
오렌지 물음표
괄호 닫고
침묵, 침묵들
저장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심장의 근육은 불수의근
마음은 심장 속에 있지 않고
현관 앞에 내다 버린 택배 상자 속에 있다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 뚜껑 속에 있다
비행기 화물칸에
아내의 사랑스러운 이마 위에
오렌지의 몸으로 산다는 건 말이지
오렌지만 알 수 있어
기분이 오렌지할 때는
지도를 펼쳐 놓고 모르는 가게에 점을 찍는다.
이방인의 마음은
이방인만 알 수 있어
혼자 사는 사람의 마음은
혼자 사는 사람만 알 수 있어
딱 오늘 하루만큼의
딱 한 사람 여분의 정직한 외로움
오렌지 주스가 되어서
오렌지 잼이 되어서
오렌지 껍질 설탕 절임
오렌지 케이크 소르베를 채운
오렌지 지브레
오렌지 크림 케이크 글레이즈드
오렌지 세그먼트가 되어서
나의 쓸모를 고민하다
진지해지기 전에
아무렇게나 오렌지.
단지 소심하고
단지 사려 깊은
이상한 오렌지 되기.
강혜빈
뉴노멀이 될 양손잡이. 낮에는 청소년들과 국어 수업을, 밤에는 타로와 복싱을 한다.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 『미래는 허밍을 한다』, 『밤의 팔레트』,『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외 다수. 사진작가 ‘파란피 PARANPEE’로 활동 중이며, 빛과 컬러를 중심으로 이미지를 발명하고 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불문학을 배웠다. 서울문화재단 2021 ‘창작집 발간 지원사업’ 기금을 수혜했으며, 첫 책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KO 2020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되었다.
webzine-vol2-1
여는 글
웹진 놀 편집부
[본문 크기 조정]
나와 당신, 우리의 몸
문화살롱 5120이 두 번째 웹진 ‘#몸’을 세상에 내어 놓습니다. 문화예술이 인간의 활동이라는 점에서 문화예술은 우리의 몸을 떼어 놓고서 이야기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몸은 개개인에 특유한 것이자 모두가 다른 것이기에 다양성 속에서 이야기되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사유 속에서 웹진 ‘놀’ 편집부는 우리 사회에서 몸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을 이번 호에 담고자 총 8인의 필진을 선정, 섭외하여 이번 기획호의 원고를 부탁드렸습니다.
‘다른 몸들’의 대표 조한진희의 ‘몸과 질병 서사’는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 전제하는 건강한 몸이라는 기본값 속에서 타자화되는 몸을 돌아봅니다. 필자는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이 만성질환자의 시대라 할만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에 건강중심사회가 소외시키는 우리의 몸을 복권하고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를 바꾸자고,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함께 만들자고 요청합니다. 무용평론가 허명진은 감각이 ‘몸의 순간을 획득하는 역설적 차원’에서 우리가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물리적 신체기관과 감각과의 연결을 해체할 필요에 대하여 논합니다. 그에게 우리의 몸은 “레몬의 신맛을 떠올리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미 그 신맛을 느끼는, ‘이미 있음’의 차원을 담지한 것입니다. 이러한 몸의 특성은 “기술적 진보라는 관념을 무색하게 만들기까지 하는 것”이기도 하죠. 이러한 필자의 시선을 통해 코로나 19 이후 가열차게 논의되었던 메타버스 세계의 몸이 처음 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의 의식이 언제나 가상의 메커니즘을 활용해 왔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미술평론가이자 인권활동가인 남웅은 당연하게 여겨 온 신체적 특징에 근거한 성별의 구분이 오늘날 어떠한 담론 속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이원론적 성별의 고정관념 속에서 배제되는 자들의 몸에 관하여 “기존의 규범을 강고히 하며 몸의 양태와 행위에 위계를 두고 범죄화하기에 앞서, 그가 자신을 설명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상해와 손상, 차별과 낙인 등의 위해를 겪지 않도록 사회·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광화문에서 이원론적 성별의 이분법에 대항하고 젠더의 분화된 스펙트럼을 공론화하고자 했던 이들에 가해지는 폭력에 가슴 한쪽이 시큰했습니다.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할 단어를 선사받은 것에 고마운 마음입니다. 동화 작가인 김지완은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어린이의 몸에 주목합니다. 하등 불필요하며 독과 같은 사회적 우열을 만들어 내는 ‘표준’이라는 개념을 문제 삼으면서 말이죠. 작가가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픈 한 마디 “표준형 어린이 같은 건 그때도 지금도 없다”는 말은 어릴 적 어느 순간의 저에게도 여러 번 필요했을 말입니다. 이번 웹진에는 장애예술인 창작거점 공연장으로 2020년 건립된 ‘모두예술극장’의 이야기 또한 실었습니다. ‘장애’는 단순한 용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라는 천명에서, 또한 이것이 장애예술인이 갖는 특성이자 수월성이라고 말하는 데서 우리는 ‘정상’과 ‘장애’라는 범주를 돌아보게 됩니다. 장애여성공감의 진성선 활동가는 배우이자 활동 지원 현장의 코디네이터로서 다양한 주체와 협력하는 몸을 돌아봅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몸들의 경험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에 몸에 대한 인식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서로 맞대어 서는 몸들에 아낌없는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몸에 대한 이야기가 문학이라는 렌즈 속에서는 어떻게 변주될까요? 이러한 궁금증과 기대 속에서 몸에 대한 창작 시 두 편 또한 의뢰하여 함께 실었습니다. 몸을 이야기하는 언어는 다시 그렇게 우리의 몸을 환기합니다.
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꾸려진 글뭉치들 외에도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웹진 ‘놀’ 편집부는 이렇게 문화예술 담론 속의 몸 이야기에 하나의 시작을 열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실타래들이 여러분의 사유 속에서 이어져 또 다른 이야기들로 곳곳에 펼쳐나가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2024년 여름, 전에 없는 습도 속에서 ‘놀’ 두 번째 호를 마무리하며
문화살롱 5120 디렉터 배혜정
고요한 밤에는 바깥의 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리곤 합니다. 이웃집 전화벨 소리, 한낮에 미처 떠오르지 않았던 말들, 운이 좋다면 풀벌레 소리도 들을 수 있지요. 지하철역과 멀지 않은 집에서는 이따금 방바닥에 귀를 대면 열차가 역을 통과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저는 그것이 도시의 맥박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만약 도시 전체가 거대한 몸이라면, 거기에 호흡을 부여하는 것은 도시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존재일 것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 식물까지도 모두 말이죠.
그러나 도시의 구획과 벽들은 존재와 다른 존재 사이에 가로놓여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여전히 타자의 영역에 갇힌 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기를 강요받으며, ‘다름’은 이 완벽해 보이는 도시에 균열을 초래하는 불온한 것으로 규정되곤 합니다. 더 나은 미래의 가능성은 언제나 균열로부터 비롯되는데도 말이죠. 어쩌면 우리의 도시 또한 균열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몸에 관한 여덟 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성스레 원고를 준비해 주신 필진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부디 한밤의 적막 속에서 나누는 말들처럼 조곤조곤 전해지기를, 그리하여 벽 너머의 서로를 궁금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로그램 매니저 박신욱
이번 ‘vol.2 #몸‘은 여러 필진의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몸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담았습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각기 다른 몸을 지닌 작가들이 하나의 주제 아래 서로 연결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곧 기대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서로 다른 얇고 투명한 글들은 한데 모여 하나의 말뭉치가 되었고, 그 자체로 충분했습니다.
여러분께선 이 말뭉치 속에서 눈여겨보지 않던 누군가의 동선을 따라가고, 피부 아래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며 건강을 되새기고, 내려다보던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규정된 몸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여정으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작게나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몸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프로그램 매니저 홍해준
세상에 좋은 글들이 너무 많은데, 너무 많기 때문에, 내가 더 골똘히 찾고 집요히 뒤지지 않으면 우리가 만날 확률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실은 제가 찾거나 뒤졌던 게 아닐 것입니다. 작가님들이 작가님들의 자리에서 언제나 해야 할 말을 해왔기 때문에 마침내 만나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웹진에 기꺼이 참여해 주시고 마음을 모아주신 모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웹진을 기획하면서 많은 원고와, 원고 속 문장과, 문장을 쓴 사람과, 사람이 속한 단체와, 단체가 하는 활동과, 활동이 가진 의미와, 의미가 파생하는 물결을 보았습니다. 그 물결이 제 안으로 어떻게 스며들고 흡수되는지도 지켜보았습니다. 그건 하나의 큰 몸처럼 느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번 기획 호를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서도 꼭 그 과정을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문화살롱 5120과 웹진 <놀>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꾸준히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코디네이터 김지현
지망생의 노래
기획 칼럼
지망생의 노래
윤혜은
[본문 크기 조정]
삼십 대 중반, 더는 지망생이 되는 일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십 대의 나는 가수 지망생이었고, 이십 대에는 소설가 지망생이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러니까 남들이 볼 때는 그랬을 것이다. 야간자율학습을 면제받은 채 노래를 부르러 다녔고,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한 뒤로 계속 소설을 쓰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스스로를 지망생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지망생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어떤 전문적인 분야의 일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 또는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들고자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나는 시절마다 사로잡힌 예술에 대한 탐구력이 강하지도, 앨범을 내거나 등단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 같은 게 있지도 않았다. 그때그때 알량한 재주를 부리고 이따금 누군가 감탄하는 걸 즐기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꿈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이 꿈을 꾸는 게 맞나? 자주 멈칫하게 되는. 그러니까, 지망생조차 되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 ‘넌 ~가 될 거잖아’라고 확인하듯 응원이라도 건넬라치면 그저 아리송하게 웃곤 했다. 그건 내 애매한 재능과 진심을 들키지 않기 위한, 남들이 기대하는 내 미래에 미치지 못했을 때를 견디기 위한 방어기제였지만, 한편으론 진심으로 궁금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면 꼭 가수가 되어야 하나? 소설 쓰기를 좋아하면 반드시 소설가가 되어야 하나? 뭔가를 하고 있다고 선언하면 그걸로 무엇이든 되어야 하는, 이뤄야 하는 루트를 결국 이탈해버리고 말거란 상상으로 괴로웠다. 실제로도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지켜야 할 줄 몰라 아예 그 마음을 피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말았으니, 일찍이 나를 잘 알아봤다고 해야 할까. 외부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도 아무런 다짐이나 각오를 요구받지 않아도 되는 성실한 감상자로서의 자신이 더 잘 어울린다고 서둘러 타협하면서 나는 기나긴 지망생 흉내의 시간을 끝냈다.
이렇게 보니 오랫동안 재능을 ‘어떤 지점에 신속히 도달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단단히 오해했던 것 같다. 재능은 레이스를 달리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데. 나도 좋아하는 마음의 부침을 견디면서 그럼에도 이 짓(!)을 계속 하고 싶은 상태, 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느껴볼 수 있었더라면. 짧지 않은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그러니까 어린 날 내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또래와 구분되는 선명한 재능이 아니라 헤맬 수밖에 없는 삶의 속성을 받아들이는 지구력이었음을, 이제는 안다는 뜻이다. 안다고 위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지망생’을 관둔 서른에게 필요한 건 때늦은 위로가 아니라 회복이었다. 다행히 삶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수정하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우며 삼십 대를 보내고 있다. 운이 좋게도 매주 꼬박 한 시간씩 내 목소리를 흘려보내는 팟캐스트를 진행 중이고, 소설보다 늦게 쓰기 시작한 산문으로 묶인 책이 하나둘씩 쌓이고 있다. 노래와 소설을 통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전하는 요즘이 문득문득 신기하다. 상상한 적 없는 삶을 노력하며 이어가고 있다는 게 꼭 내게도 잠재력이랄까 가능성이 있었다는 증거 같아서 몰래 벅차오르기도 한다. 타인의 번뜩이는 재능 앞에선 여전히 초라함을 느끼지만 내가 지닌 장점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덕분에 까닭 모를 불안에 휩싸여도 섣불리 끝을 점치려 하는 충동이 줄었다. (물론 지금은 또 다른 서투름으로 뚝딱거린다….) 좋아하는 일을 어려워하며 해내는 괴로움으로 뿌듯할 때마다 “글 쓰는 어려움에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으면서도 속에선 뭔가 조금씩 살이 찌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는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에 감히 공감하는 날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시 ‘지망생’이 될 수 있었다. 1년 전 덜컥 작사 클래스를 등록한 뒤 첫 수업을 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음악을 듣는 것 이상으로 곁에 두지 않겠다고 입을 다문 시절이 떠올랐다. 맞아 그랬지. 그런데 걸어 잠근 마음에 금이 가는 것이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언젠가의 나처럼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 대신 이 마음에 정확히 대답하고 싶어서 10개월의 커리큘럼을 포기 않고 따라가 봤다.
노래를 잘 쓰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는 계속 불러보며 쓰는 것이다. 이때의 가창이란 내 가사가 데모곡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지, 멜로디와 가수의 입에 잘 맞을지 점검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지만, 쓰고자 하는 가사를 다름 아닌 내가 가장 먼저 불러본다는 점이 나로서는 어떤 위로가 되었다. 알고 보니 노래를 쓰는 일과 노래를 부르는 일이 가깝다는 사실이, 그걸 직접 알아채 버린 오늘이 놀랍고 반가웠다. 완전히 종결되어 상실로 남은 시절도 새롭게 이어질 수 있음을, 작사를 배우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마침내 나에게 돌려줄 말 한 마디도 얻었다.
‘이제는 뭔가를 원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자신이 있어서도, 너무 간절히 원해서도 아니고 한번 되어보고 싶은 그 마음을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어.’라고.
혼자 되뇌었을 뿐인데 속이 다 시원하다. 기대하는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지켜볼 수 있는 거였구나. 어처구니없는 홀가분함이 밀려온다. 그러므로 가요대회에 나갔던 10대처럼, 문학상에 응모했던 20대처럼, 30대의 나도 여전히 지망생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애쓰는 나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 깨끗한 기대에 따라오는 응원을 느낀다. 내가 줄곧 다른 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클래스의 정규 수강은 끝났어도 학원에서 제공하는 데모곡을 받으며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유독 내 취향의 노래를 받는 날이면 언어의 진짜 자리는 멜로디 위가 아닐까? 하고 호들갑을 떨지만, 새벽 내내 빈 문서를 마주한 채 한 곡을 반복재생하고 있다 보면 슬쩍 겁이 난다. 작사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져서 언젠가 지금의 즐거움을 잃어버릴까 봐.
어쩌면 이런 게 진정한 지망생의 마음이겠지. 지금 나는 두려워하면서도 뒷걸음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러니 살면서 한 번은 더 지망생이 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사전적 의미로써의 지망생이라면 거의 처음 겪는 거나 다름없겠지. ‘어떤 전문적인 분야의 일을 배우는’ 사람이자 이왕이면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들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되고 싶어!’라는 말을 질러 놓고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윤혜은
책방지기, 작가, 그리고 작사가 지망생. 오래하는 일을 결국 가장 좋아하게 된다.
에세이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 『아무튼, 아이돌』, 팟캐스트 ‘일기떨기’에서 출발한 대화집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동료 작가와 함께 망원동에서 ‘작업책방 씀’을 운영하고 있다. 이다음에는 어떤 작업의 결과가 먼저 올지 즐겁게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