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 5120 〈공유시선〉 선정 전시

《LH 행복 인스톨레이션》

26.06.05-26.07.11

참여작가 | 베이비부머베이비
관람시간 | 화-토, 오전 10시-오후 7시(일요일, 월요일 / 공휴일 휴관)
포스터 디자인 | 임성빈, 소성준
문의 | 02-948-1217 / culturesalon5120@gmail.com
※ 휠체어 접근이 가능합니다(미리 연락 부탁드립니다).

LH 행복 인스톨레이션

현대식 변기가 하얀 수련꽃처럼 바닥 위로 솟아 있다. 변기 끈을 잡아당겨 물이 꾸르륵 소리를 내며 휩쓸려 내려가면 육체는 자신의 추한 꼴을 잊고, 인간은 자기 내장의 배설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게 된다. 건축가는 이 불가능한 일을 실현한 것이다. 하수관은 아파트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지만 우리 시선으로부터 세심하게 감춰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배설물로 가득 찬 베네치아 위에 우리의 화장실, 침실, 댄스홀, 그리고 국회가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2011, p.256

우리 집 변기가 고장 났다. 황색 레버를 내리면 한동안 물 흐르는 소리와 울림통을 텅텅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침대까지 들리는 고철과 오물의 진동을 따라, 나는 누워서 하수관의 모양을 떠올렸다. 지하철 노선처럼 뒤죽박죽 얽힌 파이프의 다발들. 이내 우리가 하수관의 모양을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배관공이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고쳐진 변기는 별소리 없다. 그래서 사람들도 아파트 깊숙이 들어와 있는 파이프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과 별개로 우리도 우리의 화장실, 침실, 국회 아래에 심어진 파이프를 떠올리기엔 너무 바쁘다.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을 오고 가는 긴 시간에 불만을 가졌다가도 여러 합리적인 이유로 쉽게 수긍해 버린다. 하얗고 깨끗한 타일처럼 우리가 밟고 있는 합리성의 발판은 어디서나 촘촘하다. 그리고 그 타일 밑으로 세심하게 감춰진 파이프가 멀쩡하게 작동하는 것은 현재를 늘 부족한 것으로 전제하는 건축가의 성실한 설계 덕분이다.

우리 아래에 파이프가 있다. 그리고 머리 위에도. 당신이 글을 읽는 이 전시 장소, 문화살롱 5120의 위에는 국가 주도로 만든 한 동의 아파트가 있다. LH 공릉 행복주택. 신혼부부, 대학생, 사회 초년생과 같이 특정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주거 공간이다. 누가 살 것인지를 먼저 설계한다는 것은 LH가 단순한 건설사가 아니라 국가의 도시·주거 구조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기관임을 뜻한다. 또, 그 건물 지하에 전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그 행복을 위한 설계 안에 문화생활을 포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전시장 천장 파이프를 지나는 생활 하수의 소리는, 예술과 행복한 삶이 파이프로 긴밀하게 봉합되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소리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 소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유럽과 미국의 몇 예술가 집단이 원했던, 예술과 삶을 하나로 연결하려는 그 시도의 지나친 성공 또는 실패를 기리는, 끊이지 않는 연주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예술가 중 한 명인 마르셀 뒤샹은 변기를 전시장으로 가져와 <샘>이라 이름 지었다. 그 혁명적인 배관 용품 아래에서 하수관을 닮은 미술사의 연표들이 다발로 쏟아져 내렸고 그 중 한줄기가 이곳 천장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 예술가들의 실패란 지나친 성공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기꺼이 합리성이라는 매끈한 타일을 부숴버리려 했다. 그 무한한 긍정의 벽을 부숴버리고 세계의 내장을 보여주고자 했다.

뒤샹이 죽은 지 3년 뒤,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가 보부르 지역의 빈민가를 정리하고 건립한 미술관이 착공되었다. 1977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대통령의 이름을 따 퐁피두 센터가 되었다. 자국의 기술적 성취와 문화적 개방성을 자랑하기 위해 퐁피두의 배관공들은 온갖 배관과 뼈대를 미술관 외부로 펼쳐놓았다. 미술관의 개관전 중 하나가 일찍이 프랑스를 떠나 미국에서 유명해진 뒤샹의 첫 번째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전후 문화예술의 중심을 가져오려는 국가 차원의 배관 공사이기도 했다. 고전 건축을 뒤집은 듯한, 유리로 된 외벽과 기둥이 없는 구조 설계는 계급적 경계가 없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개방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부추겼다. 이러한 경향은 예술 안에도 적용되었는데 예술 장르 간, 그리고 일상과 예술 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 역사적 사명 아래, 제도는 급진적인 예술들을 건강하게 편입시키려 했다. 모든 장기를 열어젖힌 인체 해부도의 공허한 눈으로. 태초의 인간처럼, 퐁피두 센터는 벌거벗음에 대한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리고 이제 그런 투명한 구조는 이전의 사명으로부터 한 번 더 떨어져 나와 카페의 브랜드 전략이나 사무실의 인테리어가 되었다. 그 투명성이 가진 매끈함이란, 새하얀 타일과 다를 것 없다. 그래서 이곳, 5120의 천장은 현실적 제도와 오래된 정신의 때늦은 성공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파이프들의 장이다.

프라하 변두리 노동자 동네의 낡은 건물 화장실은 이보다 덜 위선적이다. 회색 타일 바닥 위에 변기가 비참한 고아처럼 서 있다. 그 형태는 더 이상 수련꽃을 연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하수관 끝의 터진 주입구라는 본색을 드러낸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2011, p.256

파이프들, 그리고 공릉 행복 주택으로부터 7호선을 타고 죽 내려가 2시간 반쯤 지나면 내가 살고 있는 빌라가 나온다. 행복에 이어 빌라의 이름은 신혼. 이름에 담겨있는 신혼(新婚, newlywed)이라는 막연한 기대와는 반대로 건물은 꽤 오래됐다. 도시 중심을 살짝 비껴가면 나올 듯한 갈색 벽돌의 다세대주택. 아늑한 내부와 다르게 안팎을 가로지른 철창살 옆으로 각종 배관이 지나다닌다. 배관에는 환풍기와 실외기가 층층이 매달려 더운 바람이 분다. 이런 빌라의 형태는 퐁피두처럼 위대한 정신을 계승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건폐율과 용적률 같은 건축법에 최적화된, 제도를 따르는 형태이다.

제도가 공간의 구조, 그리고 삶의 구조를 배치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우리가 변기를 이용할 때마다 변기도 우리를 몰래 이용한다. 눈과 카메라 만큼이나 항문은 변기, 하수관, 아파트, 전시장, 행복, 역사와 접합되어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기계가 되어야 한다’라는 워홀의 염원처럼 ‘긍정적 의미’의 기계가, 파이프가 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낡은 하수관 끝 고장 난 나의 변기만은 그 긍정으로부터 삐져나와 옆길을 튼다. 그는 역사의 족보로부터 유예당한, ‘비참한 고아’ 같은 변기다. 동시에 깨진 유리창의 존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리의 논리에서 고장은 하나의 니즈다. 때문에 고장 난 변기는 그 파이프 더미에서 구원받을 수 없다. 그 구원은 온갖 말할 수 없는 것들, 인간의 주의력마저 수치로 환산하는 장치 아래에서는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며, 배관공이나 테러리스트에게는 더더욱이나 그렇다.

그렇다면 고장은 그 자체로 어떻게 가능한가? 수리의 논리 아래, 고장은 우연히 일어나는 사고(accident)이며 제거되어야 할 변수이다. 그러나 고장은 그보다 능동적이다. 고장은 장치와 장치의 접합에서 웅크린 채로 어떤 한 순간을 기다린다. 파이프를 이루는 관과 엘보의 사이에서, 또 엘보와 관, 그 등가적인 형태 사이에서 분열적인 시선을 뻗칠 그 순간을 기다린다. 그 시간은 기능이 없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기능이 노출되는 순간이다. 기능을 바라보는 기능, 파이프를 바라보는 파이프. 이런 피드백 루프의 구조는 우리에게 다른 종류의 성실함을 요구한다. 발 딛는 곳으로부터 어긋난 시선을 보내며 지속적으로 지연되는. 마치 고장 난 변기의 반복되는 파열음과 같이, 소리 지르는, 읊조리는, 조잘거리는, 텅텅거리는.

베이비부머베이비 김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