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 5120 노원구 청년주간 기획전 남다현 개인전

《2008년 7월 12일 청구3차 106동 507호》

25.09.18-25.10.25

참여작가 | 남다현
관람시간 | 화-토, 오전 10시-오후 7시(일요일, 월요일 / 공휴일 휴관)
포스터 디자인 | 남다현
문의 | 02-948-1217 / culturesalon5120@gmail.com
※ 휠체어 접근이 가능합니다(미리 연락 부탁드립니다).

청구 3차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특별 공지

안녕하세요, 청구 3차 입주자 여러분! 입주자대표 권태현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 청구 3차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임장을 하러 오는 분들이 급증하는 가운데, 개별적인 세대 방문이 너무도 빈번하여 관리사무소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그에 따라 106동 507호를 임시 견본 주택으로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입주 세대에서는 개별 외부인 방문을 지양하고, 견본 주택 방문을 권장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2008년은 우리 청구 3차 아파트에 아주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최근 전국적인 아파트 가격 하락에도 우리 청구 3차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명실상부 강북 최고의 학군지인 은행사거리의 위상이 건재하고, 그 중심에 우리 청구 3차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정권 변화를 비롯하여 부동산 정책의 불안정성이 종식된 것은 아니기에 결코 방심할 수 없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사업 추진, 장기적인 재건축 마스터플랜 수립 등 다방면에서 청구 3차 아파트의 가치와 입주자 여러분의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입주자 여러분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번 견본 주택 프로젝트는 다현 건설과 협업으로 진행되었음을 밝힙니다. 다현 건설과 협업을 하게된 다양한 연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다현 건설의 남다현 대표가 우리 청구 3차의 주민이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남다현 대표는 그 당시 노원구 아파트의 주거 양식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해당 시기 노원구 생활을 정리하고 타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기억의 분기점이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기점 없는 일상적인 시공간의 연속선 상에서 무언가를 기억해 내는 일과 어떤 사건을 통해 각인된 이미지를 불러오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 됩니다. 비디오 게임으로 치면 일종의 세이브 포인트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같은 곳에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공간은 기억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곳이더라도 시차를 가지고 돌아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되지요.
  남다현은 무언가 복제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사물이나 장소, 이미지를 복제할 때도 있고 최근에는 미술사적 대상을 복제하기도 합니다. 남다현의 복제 작업은 무언가를 정교하게 복제해 내지 않습니다. 원본과 차이를 명확하게 가지고 있죠. 그러면서도 무엇을 복제한 것인지 인지할 수 있는 선은 절묘하게 지킵니다. 조금만 자세히 살피면 바로 티가 나는 이상한 유사성이 남다현의 작업이 가진 힘입니다. 뒤샹식 레디메이드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개념인 앵프라맹스(Inframince)와는 다르게 작동하는 수프라맹스(Supramince) 같은 말을 만들어 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어로 ‘Infra-thin’ 정도로 번역되는 앵프라맹스는 감각하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를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뒤샹의 앵프라맹스가 차이의 미세함과 인지 (불)가능성의 문제라면, 남다현의 수프라맹스는 그 차이의 간극을 의도적으로 더 벌리고, 관객이 그 간극을 명확히 인지하게 만듦으로써 발생하는 미학, 비판, 유머가 뒤섞인 무언가일 것입니다.
  청구 3차 106동 507호는 동시대의 일상적인 사물도 역사적인 대상도 아닌, 기억의 대상이기에 더 흥미롭습니다. 이곳은 남다현이 그 당시에 두고 온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만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이 과거의 사물을 그대로 옮겨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노원구 주민들이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만드는 프로젝트가 함께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 물건을 정말로 되찾지 않고 엉성하게 다시 만들어내는 형식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다시 만든 사물들은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때로 정확하지 않은 기억이 끼어들 때도 있죠. 기억에서도 수프라맹스와 같은 것이 작동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진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청구 3차 아파트의 106동은 506호까지만 존재합니다. 2008년과 2025년의 간극에서 무엇이 발견되는지가 오히려 중요한 문제입니다.
  과거를 그대로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간과 지금 사이의 틈을 만들어내는 실천으로서의 기억하기, 그리고 반복하기가 여기 있습니다. 과거 노원구의 한 생활 공간을 현재 노원구의 한 전시 공간에 손수 복제하는 남다현의 작업은 역사적인 것을 사적인 것으로 격하시키는 일이 아니라, 얼룩과 열화를 통해 지난 시간이 불려 오는 지금 여기의 구조를 돌아보는 작업이 됩니다. 과거의 사물을 다시 만드는 작업은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유실된 것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껍질만 남은 격하된 사물, 열화된 기억의 얼룩 같은 것을 통해 지금을, 또 여기를 돌아보게 된다는 점을 떠올립니다. 모쪼록 특별 공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신 모든 분들의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7월 12일
청구 3차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권태현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