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 5120 2023 전시공모 선정작가전
《We can take a shower together, If you want.》
24.05.24-24.07.06
참여작가 | 공재
관람시간 | 화-토, 오전 10시-오후 7시(일요일, 월요일 휴관 / 공휴일 휴관)
※ 휠체어 접근이 가능합니다(미리 연락 부탁드립니다).
오프닝 | 2024년 5월 24일(금) 오후 6시 30분
전시 사진|이동웅
포스터 디자인 | 원정인
문의 | 02-948-1217 / culturesalon5120@gmail.com
삶과 예술, 기억과 흔적 – 그 그림자로서의 예술
단 하나의 선도 그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난 지금 순간처럼 위대한 화가인 적은 없었지..아아, 내 안에 충만하고 따스하게 살아 있는 것을 종이 위에 살려 낼 수 있다면.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中, 요한 폰 괴테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가? 예술을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는 철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어서 플라톤에게서 예술은 세계의 모사본으로 정의되었다.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오던 예술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낭만주의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또 다른 하나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술이 인간의 내면, 즉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후 예술(내지 예술에 대한 규정)은 재현과 표현의 문제를 넘어 그 정의 자체를 회의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가? 예고 시절부터 조각을 전공해 온 공재의 첫 개인전 《We can take a shower together, If you want.》는 예술과 삶, 기억과 신념, 예술가와 인간 그 사이를 멤돈다. 전시의 중심이 되는 모티브들은 작가가 경험한 사건들과 그 순간의 작가 자신, 그리고 작품으로 화(化)하는 현재이다. 전시의 제목이 되기도 한 〈We can take a shower together, If you want.〉는 작가의 태국여행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기차에서 만나 친구가 된 한 태국인이 작가를 집에 초대해서는 씻으라며 건넨 한 마디가 바로 이 말이었던 것이다. 당황한 그의 눈빛에 상대는 멋쩍게 자리를 떳지만 작가는 전에 없을 속도로 씻으면서 어떻게 그 집을 빠져나갈지만을 궁리했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작품이 탄생했다. 이 인간적 경험이 예술이 되는 순간은 소재가 작품으로 선택된 순간을 넘어 그가 형상화한 사건의 조형 과정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의 사건에서 비롯한다. 원형을 만들어 석고를 뜨고 난 뒤 갈라지고 깨진 채 남겨진, 원형을 이루던 흙의 파편이 그에게는 더 기억의 본성에 닿아 있는 듯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기억의 형상을 마치 오래된 유물인 양 깨지고 헐어 원형을 알 수 없고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으로, 마치 기억이 퇴색되듯이 그러한 것으로 남겼다.
이 전시에서 주목할 점의 하나는 바닥에 포진한 작품들이다. 입구를 들어서서 만나게 되는 납작한 발바닥, 전시장 중앙을 가득 메운 사과 오브제들은 기존의 조각이 의례 구성하던 수직의 시선축을 수평으로, 아주 낮은 수평 축으로 옮겨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 납작한, 바닥의 형상들은 관람객의 관람 동선을 엄격히 제한한다. 이리저리 놓인 오브제들 사이에서 우리의 몸은 걷기를 제한받고 좁은 공간으로 몰리며 발걸음을 조심하게 된다. 여기서 관람객의 신체는 작가가 경험한 몸의 경험을 옮겨 놓은 것1)이자 그가 경험한 대상들의 자취를 연상케 하는 동선에 강제된다. 수건이 걸려있는 벽과 바닥에 놓인 오브제들 사이에서 우리는 좁은 욕실에서 신체의 움직임이 제한되는 경험을 몸으로 떠올리게 되고 갈 지(之)자로 배열된 배치를 통해 인도의 한 도시에서 큰 제한 없이 거리를 누비는 소들의 움직임을 따라 걷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서 관람객은 재현된 내용의 인식으로서의 관람이 아니라 관람의 행위에서 발생하는 경험으로 작가의 시간과 경험 또 기억에 연결된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그래서 예술가 공재는 무엇을 하는가? 괴테가 그린 청년 베르테르에게 삶과 사랑은 예술처럼 섬세하게 다뤄야하는 것이자 예술이 그렇듯 삶 또한 버거운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에게 삶과 예술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작하는 예술가인 공재에게 예술은 삶을 구성하는 것이자 삶과 일치되는 것인 듯하다. 그것이 그가 다루는 기억과 경험의 결을 기억하고 다음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1) 작가 인터뷰 참조.
배혜정 문화살롱 5120 디렉터